중양절은 음력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名節)입니다. 중일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들이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합니다. 또 ‘귈’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습니다.
✔️ 중양절의 유래
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로, 그곳에서도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한족의 전통 절일입니다.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 대에는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켰습니다.
등고회(登高會)는 중양절의 중요한 행사인데 이날 우산(牛山)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제나라 경공(景公)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행해졌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내려오는 전설에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桓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하였습니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 대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유 주머니를 차는 것은 나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서이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능적인 해석도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의 중양절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습니다.
중양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는데, 국가에서는 고려 이래로 정조(正朝),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함께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省墓)를 하였습니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 모자를 떨어뜨리는 등고의 풍속이 있었고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賞菊), 장수(長壽)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거나 혹은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의 행사를 가졌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이날 남산과 북악에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등고하는 풍습을 따른 것입니다.
중양절에는 이와 같이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刑)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 중양절의 농촌 풍습
농촌에서의 중양절은 농촌이 한창 바빠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합니다. 퇴비 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작업입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도 따야 하고, 또 콩, 팥, 조, 수수, 무, 배추 같은 밭작물의 파종과 수확이 겹칩니다. 그러므로 농촌에서는 중양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양수가 겹친 길일(吉日)이므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이날을 즐겼습니다. 등고 풍속이 그러하고 국화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 것도 그 예가 있습니다.
추석 때 햇곡식으로 제사를 올리지 못한 집안에서는 뒤늦게 조상에게 천신(薦新)을 합니다. 떡을 하고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에게 밥을 올려 차례를 지내는 곳도 있습니다. 전남 고흥의 한 지역에서는 이때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귈제’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각 마을마다 또는 두세 개 마을에 한 명씩 동네 단골무당이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이세(里稅)를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 중국 당나라의 중양절
중국 당나라에서는 중양절이 되면 나라에서 태학(太學)의 학생들에게 겨울옷을 하사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중양절 무렵이 겨울을 준비하는 적절한 때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중구절의 국화술은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가 이날 국화밭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도연명의 친구가 보낸 술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연명은 국화꽃과 함께 온종일 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중양절에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운치를 깨달았는지 “우연히 울 밑의 국화를 대하니 낯이 붉어지네.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쏘아보는구나.”라는 글귀를 남겼습니다. 두목(杜牧)이 남긴 취미(翠微)의 시구에도 이날 좋은 안주와 술을 마련해놓고 친구들을 불러서 실솔시(蟋蟀詩)를 노래하고 무황계(無荒戒)를 익혔다고 합니다.
✔️ 중양절 관련 음식
중양절에 관련된 절식음식으로는 국화주와 국화전이 있습니다.
✔️ 국화전
국화전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동그랗게 만들어 그 위에 국화 꽃잎을 붙인 후 기름에 지져내는 음식입니다. 주로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重陽節)에 절식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한자로는 국고(菊糕) 또는 국고(菊餻)라고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빛이 누런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을 만든다. 방법은 3월 삼짇날의 진달래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다. 이것을 화전(花煎)이라 부른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문헌에서 이 풍속의 기원을 찾았다. 한무제(漢武帝) 때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월 9일에 이(餌)를 먹었다는 『서경잡기(西京雜記)』의 기록입니다. 또 중국 송나라의 문헌인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의 9월 9일에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쪄서 서로 나눈다는 기록을 들어, 당시의 국고(菊餻)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丁若鏞)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1집 잡찬집(雜纂集) 권 24 「아언각비(雅言覺非)」 권 3 조고(棗糕)에서 “중국에서 중양절에 먹는 대추와 밤을 넣은 면병(麵餅)을 화고(花糕)라고 하는데, 이것은 증병(蒸餅)의 일종이다. 조선에서 이때 먹는 화고는 쌀가루를 익반죽 한 것에 꽃을 붙여서 기름에 지져 먹는 유전(油煎)으로 중국의 것과 다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볼 때 적어도 18세기에는 중양절에 국화전을 널리 먹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영조 때의 학자 유척기(兪拓基)가 지은 『지수재집(知守齋集)』 권15 「잡저(雜著)」의 각 절일(節日)에 올리는 제물을 소개하는 유계(遺戒)란 글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중구에는 국고를 제물로 올리는데, 만약 국화가 피지 않았으면 다른 떡으로 대신한다.” 한편 김정희(金正喜)의 『완당전집(阮堂全集)』 권 10에는 ‘바닷가에서 중구에 국화가 없어 박떡을 만들다(海上重九無菊作瓜餠).’라는 시가 나옵니다. 이로 미루어 성리학적 예법이 일상생활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중국의 중양절 면병이 국화전으로 정착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서는 “화전은 전병 만드는 법과 같으나, 전병은 작게 부치는 것이고, 이 화전은 전병을 접시만큼 부쳐서 한 치(3센티미터) 길이와 다섯 분(5센티미터) 너비로 쓸어서 설탕을 묻힌다. 화전을 냉수에 반죽하면 빛이 좋지 못하고, 기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금물을 끓여 더운 김에 반죽하는 것이 좋다. 또 진달래나 장미는 많이 넣어도 좋지만 국화를 많이 넣으면 맛이 쓰다.”라고 했습니다. 20세기 초반에도 국화전은 화전의 일종으로 많이 해 먹었다. 그러나 중양절이 세시풍속으로서 의미를 상실한 1970년대 이후 국화전 역시 절식으로 먹는 가정이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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