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케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음악도 그런가 봅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조선의 선교사인 친구를 위한 노래입니다. '아베 마리아'란 로마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경외하는 말로써 '마리아 님 안녕하십니까? 마리아에게 영광이 있기를!' 라며 인사하고 기도하는 말인 동시에, 성모 마리아를 숭모하고 찬미하는 노래를 가리킵니다. 이 곡이 작곡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BWV 846 중 전주곡 1번 다 장조에 샤를 구노가 가락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합니다. 1853년 구노의 장인 피에르 치머만이 구노의 연주를 바이올린(또는 첼로), 피아노와 하모늄을 위한 곡으로 편곡하여 ' 바흐의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1번에 의한 명상'이란 제목으로 출판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이 곡은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시 생명의 책을 가사로 하여 출판되기도 했으며, 지금의 Ave Maria로 시작하는 라틴어 성모송이 가사로 붙게 된 것은 1859년 입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을 가슴에 되새기는 오늘 … 가톨릭 굳뉴스게시판 62227번(서한규)에서
어린 구노는 음악 신동이라 불렸습니다. 빠리 외방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같은 학급에는 구노는 ’음악 천재’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였고 선의의 경쟁자였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친구가 음악을 하리라고 생각했던 구노는 신학교에 들어간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 그 친구 소식도 묻어왔습니다. 사제가 된 그 친구가 빠리 외방 선교회에 들어갔다고…
구노는 그 친구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어느새 중국으로 발령받아 갔다는 소식만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구노는 그 친구를 위해 틈틈이 기도를 했습니다. 오랜 사목 후에 휴가라도 오면 옛 추억을 나누며 차를 함께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어쩌면 자신이 그 친구가 있는 중국에 가서 동양 문물도 구경하며 그 친구가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가끔씩 학교 게시판에는 붉은 글씨로 “…. 순교”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평화 속에서 주님을 믿는 순박한 사람들은 전율을 금치 못했습니다. 구노도 물론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가슴 아파했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교의 자유가 주어진 중국이기에 내심 안도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게시판에 그 친구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빨간 글씨는 아니어서 안심을 했지만 내용을 읽어본 구노는 경악스러웠습니다. 그 친구가 “조선 대목구 주교”로 임명되어 죽음의 땅 “조선”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구노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기 힘들다는,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는, 차라리 순교하기 위해서 조선으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횡횡했던 바로 그 “죽음만이 기다리는” 조선으로 들어간답니다. 구노는 날마다 주님과 성모님께 그 친구가 제발 무사히 돌아와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주일날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학교 정원에서 산책을 하던 구노는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삼종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요란하게 종이 울린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였습니다. 의례 그랬듯이 순교자가 또 나온 것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달음질쳐서 뛰어간 구노는 실신지경이 되었습니다.
게시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엥베르 주교 조선에서 순교”
눈물이 앞을 가려 서 있을 수 조차 없던 구노는 정신없이 뒷동산으로 뛰어갔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자비로운 눈길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성모상 앞에서 구노는 목놓아 울며 성모송을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Ave Maria는 성모송입니다. 그렇게 친구이자 조선의 주교이자 순교자이며 후일 영광스러운 성인의 관을 쓰신 성 엥베르 주교를 기리며 만들어진 노래가 “구노의 아베마리아”입니다.
그 지구 반대편, 인종도 모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소위 “미개인”들의 나라에 와서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하느님의 씨앗을 뿌린 우리의 성인은 지금도 명동 대성전 지하에 잠들어 계십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아버지이시며 전교 회장을 역임하시다 역시 순교하시고 성인반열에 오르신 “성 최경환 방지거”와 나란히…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을 가슴에 되새기는 오늘 … 가톨릭 굳뉴스게시판 62227번(서한규)-
샤를 구노
프랑스 파리 출생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음악을 배웠으며, 1836년 파리음악원에 들어가 작곡 등을 공부하였다. 1839년에는 로마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 유학했습니다.
그 후 독일을 거쳐 프랑스에 돌아온 후부터 극장음악에 흥미를 갖고 공부하였으며, 몇 차례 실패작을 쓴 후 《벼락치기 의사》(1858)와 대표작 《파우스트 Faust》(1859)의 성공으로 오페라 작곡가로서 유명해졌습니다. 그후 《로미오와 줄리엣》(1867) 등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오페라는 일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종교음악분야에서 활약하였으며, 직접 합창단을 만들어 자작과 고전적 종교작품의 소개에 힘썼습니다.
그는 프랑스음악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양식을 배제하려고 노력한 메율, 브와엘디외 등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나 스스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작품의 특징은 아름다운 선율에 있지만, 같은 시대의 마이어베어처럼 지나치게 화사하거나 감상적인 것이 아니며, 알맞게 절제되고 조화도 잘 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오페라 이외에 오라토리오·칸타타 등의 종교작품과 《아베 마리아》 《세레나데》 등 가곡이 많은데, 특히 후자는 후일의 프랑스가곡 발전을 위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로랑조제프마리위스 앵베르(Laurent-Joseph-Marius Imbert, 1797년 4월 15일 ~ 1839년 9월 21일)는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며, 한국어명은 범세형(范世亨)입니다. 주교로서 천주교 조선교구 2대 교구장이며,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프랑스 마리냔(Marignane)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1818년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명동성당 지하성당에는 성인 엥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최경환, 김성우와 4위의 순교자 등 9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하성당은 기도하기 좋은 곳입니다. 아늑한 공간에서 기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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