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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나이/ 궁녀의 복식/상궁

by 달러박스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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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宮女)는 궁인(宮人), 나인(內人), 여관(女官)이라고도 하는데, 본격적인 궁녀 제도는 고려 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 초에는 후비(后妃) 이하를 모원(某院)·모궁 부인(某宮夫人)으로 일컫다가 현종 때에 비로소 상궁(尙宮), 상침(尙寢), 상식(尙食), 상침(尙針)의 직명을 정했다.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500∼600명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넓은 의미의 내명부에 속하였습니다. 궁녀는 본궁과 별궁뿐 아니라 제사궁이나 혼궁(魂宮)으로 불리는 왕실의 사당에 종사하는 여인까지 포함합니다.

 

궁녀의 나이

궁녀는 최소 네다섯 살 정도의 어린 견습나인(아기나인)에서 칠팔십 대의 원로 상궁까지 있습니다.

 

궁녀의 분류

신분에 따라 상궁·나인·아기나인의 세 등급으로 나뉩니다. 궁녀가 입궁한 지 30년이 되면 왕이 상궁 첩지를 내립니다.

 

상궁의 종류

상궁은 맡은 바 업무에 따라 제조상궁, 부제조상궁, 감찰상궁, 지밀상궁, 보모상궁, 시녀상궁 등으로 나뉩니다.

▷제조상궁(큰방상궁)은 각 처소의 궁녀를 통솔하는 역할을 합니다.

▷부제조상궁은 각 처소의 재물을 보관하는 하고(下庫)를 관장하기에 아리고상궁이라고도 합니다.

▷감찰상궁은 각 처소의 궁녀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지밀상궁은 왕을 시위(侍衛)하며 왕의 측근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보모상궁은 왕의 자녀의 양육을 합니다.

▷시녀상궁은 지밀 중에서 문서 관리나 연회 때 웃전을 안내하고 시위하는 임무 및 왕과 왕비의 특사 역할을 합니다.

 

나인

나인은 입궁한 지 15년이 되면 관례를 치른 후 정식나인이 됩니다. 관례는 머리를 쪽지고 어른이 되는 성인식인데, 네 살에 입궁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보통 스무 살 전후가 됩니다.

아기나인(견습나인, 생각시)의 경우 가장 어린 나이에 입궁하는 곳은 지밀(대전·내전 등)로 네다섯 살이며, 침방·수방은 일고여덟 살, 그 밖의 처소는 열두세 살에 입궁합니다. 이들은 중병이 들어 임무 수행이 불가능할 때까지 종신제로 근무합니다.

 

나인의 종류

부서는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소주방(燒廚房), 생과방(生果房), 세답방(洗踏房)으로 이루어집니다.

▷지밀은 침전·안사랑·대청 등이 있는 안채를 말합니다.

▷침방은 바느질하는 곳, 수방은 자수를 관장하는 곳입니다.

▷소주방은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안소주방과 밖소주방으로 나뉘는데, 안소주방은 주로 일상 음식을 담당하고 밖소주방은 잔치 음식을 담당합니다.

▷생과방은 음료수·죽·다식·약과·전과 등을 만드는 곳입니다.

▷세답방은 빨래·다듬이질·염색 등을 맡은 곳입니다.

 

나인의 근무시간

지밀을 제외하고는 격일제로 일하며 지밀 소속의 궁녀는 하루를 상·하번으로 나누어 아침 8시와 오후 3시에 교대하는 형식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궁녀의 수

각 부서에 근무하는 궁녀는 지밀을 제외하고는 상궁과 나인을 합하여 15명 정도이고, 지밀은 20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전궁(殿宮)의 주인인 왕족의 신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1897년(광무 1) 대한제국을 수립할 때 정한 궁녀의 숫자는 대전, 대비전, 중궁전이 각 100명, 세자궁 60명, 세자빈궁 40명, 세손궁 50명, 세손빈궁 30명이었습니다.

 

비번에는 다른 처소에 놀러가거나 기술을 익히거나 붓글씨 쓰기, 책 읽기 등으로 소일을 하였습니다. 생각시 시절에는 일고여덟 살부터 기초 교양을 쌓게 되는데, 지밀 생각시는 훗날 후궁이 될지도 모르기에 『동몽선습(童蒙先習)』·『소학(小學)』·『내훈(內訓)』·『열녀전(烈女傳)』을 읽는 것에서부터 궁체(宮體) 연습까지 다양하였습니다. 나인 시절에는 틈만 나면 비단실로 끈을 짜는 다회치기를 하였습니다. 다회(多繪)는 너비에 따라 주머니인 염낭, 귀주머니 끈, 도포 끈인 세조대(細組帶), 대례복이나 적의(翟衣)의 대로 띠던 광다회(廣多繪) 등에 쓰였습니다.

 

궁녀의 옷차림

궁녀의 옷차림은 신분, 품계,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어린 생각시는 옷차림에 구애를 거의 받지 않고 노랑 저고리, 분홍 저고리, 옥색 저고리에 다홍 치마·자주 치마를 입으며 머리는 생머리를 합니다.

생각시를 제외한 견습나인은 일반 여염 처녀같이 머리를 하나로 땋은 댕기머리를 합니다. 다만, 비빈(妃嬪)과 같은 색을 입는 것은 제한하였습니다. 견습 시절을 마친 나인은 관례 곧 계례(笄禮)를 올린 후 정식나인이 되는데 궁녀의 관례 의식은 일반인의 결혼식과 같은 의미로 왕을 신랑 삼아 왕을 위해 평생 봉사한다는 의미와 각오로 행하게 됩니다. 관례 때에는 어여머리(혹은 화관), 자주 끝동·깃 옥색 저고리, 남치마에 초록 당의와 원삼을 입고 삼작노리개를 답니다.

정식나인이 되면 궁복(宮服)인 남치마에 옥색 저고리, 초록 곁마기를 입었습니다. 곁마기는 당의보다는 가벼운 웃옷으로 초록색이며 자주 곁마기, 소매에는 흰 한삼이 달려 있습니다.

 

궁녀의 복식

근무복과 평상복이 다르며, 아침 근무와 오후 4시 이후 근무 때의 복장도 다릅니다. 오후 4시 이후에는 야간 근무 시의 간편복을 입기 때문에 치마저고리와 머리 모양을 약식으로 하였습니다. 평복은 상복(喪服)이나 비빈의 복색만 아니면 구애 없이 자유로운 색상을 입었습니다.

 

상궁 복식

상궁 복식도 나인과 다르지 않으나 조선 후기에는 나이에 따라 이회장저고리(끝동·고름에 다른 색을 대는 저고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나인이 삼회장저고리(곁마기·끝동·깃에 다른 색을 대는 저고리)인 데 반해 나이에 따라 점잖은 차림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지며 궁녀의 치마폭은 민간의 세 폭보다 넓어 보통 네 폭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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