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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경양식이란 .현재의 패밀리 레스토랑, 파인다이닝.경양식당의 역사

by 달러박스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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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이란?

경양식(輕洋食)은 특히 간소한 유럽식 느낌의 요리를 부르는 한국의 식사 분류이다. 주로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돈가스, 함박 스테이크나 나폴리탄 느낌의 파스타 등을 취급하였다.

경양식의 한자를 풀이하면 '가벼운 서양 요리'라는 뜻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도입한 서양식 식문화인 화양식(和洋食, 와요-쇼쿠)이 일제강점기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래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용되어 온 어휘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온 일본 문화의 대부분은  서양 음식을 일본에서 일부 리뉴얼한 화양식이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일본풍이 다소 가미된 서양식 요리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화양식은 일본식 다방인 '킷사텐(喫茶店)'에서 커피와 함께 주력으로 취급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최초의 경양식당

한국에서는 개화기부터 세워진 각종 호텔들의 양식당을 제외한다면 1925년 당시 경성역사 준공과 더불어 역사 내 식당으로 개점한 '그릴(서울역그릴)'이 한국 최초의 경양식당이다.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 한국 양식당의 본류로 추정된다. 개점 당시에는 꽤 제대로 된 양식을 내놓았다.

 

<서울역그릴 경양식당 메뉴>

당시 메뉴를 살펴보면 코스요리가 나왔다.

낮- 수프부터 생선과 빵, 쇠고기와 닭고기,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과일 파이, 푸딩이 나왔다.

밤- 칵테일과 오트볼빵, 수프, 생선 혹은 감자, 쇠고기, 닭고기가 샐러드와 함께 나왔고, 후식으로는 과일과 커피 또는 홍차가 나왔다.

 

경양식당의 역사

 

'그릴(서울역그릴)'은 해방 후 대한민국 철도청이 운영을 맡았는데, 경양식이 고급 먹거리로 인기를 끌던 1970~80대에는 서울역뿐만 아니라 대도시 주요 역에도 분점을 개점했다. 프라자호텔에 경영권이 넘어간다. 당시 시가 1만원에 7가지 코스요리가 제공되었다. 서울의 양식당 중 제대로 된 프랑스식 정찬을 내놓았다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양식이 쇠퇴하고 외환 위기가 찾아오면서 다시 서울역 그릴만 남게 되었다. 2004년 서울역 신역사 건설과 함께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신역사 4층에서 운영을 이어갔고 그 사이 플라자호텔도 경영에서 손을 뗐다. 다른 경양식집들보다 좀 더 격조가 있지만 그렇다고 파인 다이닝처럼 진지하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생겼는지 20211130일을 마지막으로 폐점하였다.

 

1980년대 이후 이탈리아 요리가 경양식을 대신해 서양식 레스토랑의 메인으로 자리 잡았다. 19901990년대부터는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많이 등장해서 경양식으로 대표되던 이른바 양식 외식 시장을 주도하였다. 반면 오므라이스나 돈가스는 분식으로 분류되며 간단한 식사 메뉴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오므라이스나 돈가스를 외식 메뉴라고 하기도 민망해졌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이런 음식들이 외식 메뉴로 인기가 있었다. 여러모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신 격인 식당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외식 장소로는 레스토랑에서, 메뉴로는 김밥천국 등으로 밀려서 많이 자취를 감춘 수준이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이 쇠퇴하고, 복고 열풍과 함께 과거 경양식풍의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생기면서 인기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주요 상권이나 쇼핑몰, 백화점 지하 식당가, 제법 고급스러운 상권에 가도 옛날 7080식으로 만들어진 햄버거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가격도 옛날 위상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꽤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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